5. 슈트의 단점

 

 

나는 밖에 나와 커피숍에 들어갔다.

이런 기분으로 커피숍에 가기 싫었는데....

좀 더 멋진 모습으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싶었었다.

하지만 일단 아무데나 들어가 정신을 추스릴 필요가 있었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점원이 가지고 온 카라멜 마키아토를 한 모금 마셨다.

평소에는 이런 커피는 거의 주문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에 크림이 얹어진 마키아토 정도는 되어야 어울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커피를 손에 쥐고 다시 한 모금 입에 대었다.

그리고 일부러 새끼 손가락을 보란 듯이 쫙 피고 마셨다.

전부터 여장을 하면 그런 식으로 커피를 잡곤 했었다.

그 덕분에 여장을 그만 둔 뒤에도 한동안 그렇게 커피 잔을 쥐다가 여자들한테서 이상한 눈치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창 밖 풍경을 보다가 창문에 흐릿하게 지금 내 모습이 비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눈의 촛점을 내 모습에 맞추고 가만히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살펴 보았다.

양 손으로 커피잔을 잡고 있는 모습이 얼추 귀엽게 보이긴 하지만 조금은 불만스럽다.

어떻게 하면 좀더 멋지게 보일까 고민하다가 어깨를 조금 움추려 보았다.

... 조금은 귀엽게 보이는군.

그러다가 팔꿈치를 테이블에 대보았다.

그래, 이거야.

마음에 흡족한 포즈가 나왔다.

 

나는 그런 자세로 창문 밖 거리 풍경을 내다 보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비록 슈트로 겉모습은 완벽한 여자의 모습으로 변신했지만 몸무게 만큼은 그대로 일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겉모습이 여자처럼 변신되었어도 몸무게까지 변할리는 만무했다.

그래서 아까 직원이 나를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낑낑대었던 것이었다.

곰곰히 생각하니 지금 이 변신 슈트로도 감추지 못하는 것들이 여럿 있을 것 같았다.

몸무게 말고 또 뭐가 있을까?

나는 다시 마키아토를 한 모금 입에 대면서 생각했다.

만약 이 슈트에 상처가 나면 어떻게 될까?

단단히 조여져 있는 상태니 십중팔구 조그만 상처만 나도 그것이 순식간에 크게 벌어져서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람이 드러나 보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점착되어 있는 상태라면 괜찮겠지만 과연 지금 내가 뒤집어 쓰고 있는 슈트는 조그만 기스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그걸 지금 여기서 확인해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스가 나서 그것이 조금씩 벌어지다가...

지금 저기 길 가는 사람들 앞에서 예를 들어 저기 모자를 쓴 예쁜 아가씨가 갑자기 풍선처럼 뻥 터져버린다면???

아주 단단한 힘으로 조이고 있는 슈트니까 터진다고 하면 정말 대단할 거다.

그리고 그 안에서 40대 중년 남자의 벌거벗은 모습이 갑자기 나타난다면???

생각만해도 아찔한 것 같았다.

상처 뿐만이 아니겠지.

혹시나 이 가죽을 녹이는 약품이 있지 않을까?

생활 속에서 흔히 쓰는 약품 중에는 생각지도 못하게 가죽을 녹여버리는 성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여자들이 흔히 쓰는 아세톤 같은 거.

그것을 아무 생각없이 손톱에 바른다면?

지금 내 손톱은 겉보기에는 진짜 손톱처럼 보이고 단단해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가죽 슈트로 덮혀 있는 것이다.

손톱 부분이 녹기 시작하면 그것도 위험하겠지?

그 외에 내가 생각지도 못한 위험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다시 집에 가서 이 슈트에 대한 것은 샅샅이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불안해서 더이상 쇼핑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핸드폰이 반짝 거렸다.

핸드폰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받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미리 무음으로 설정해 놓은 터였다.

나는 가만히 핸드폰을 들고 화면에 찍힌 이름을 보았다.

하지만 화면에 찍힌 이름을 보고는 전화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화면에 뜬 이름은 다름 아닌 김 승 연 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어제 이 슈트가 담긴 가방을 내게 떠넘기고 간 그 여자였다.

 

"여보세요."

 

", 연결됬네요. 어때요? 그 슈트입어 보니까?"

 

마치 아기같은 목소리다.

듣기만해도 몸이 녹아 버릴 것만 같았다.

어제 잠시 택시 안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만해도 죽여줬었는데, 폰으로 들으니 더욱 쥐기게 들렸다.

 

"역시 좋네요."

 

"~~~ 왜 그래요? 뭐 맘에 안드는 거 있어요?"

 

이 여자 십중 팔구 진짜 모습은 여자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말하는 투나 웃음 소리는 진짜 사람의 애간장을 녹일 정도로 애교가 넘쳐 흐른다.

나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경지다.

 

"킥킥킥, 아까 신발 가게에서 진짜 웃겼어요."

 

", 그때 근처에 있었어요?"

 

"글쎄요,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헤벌쭉거리며 웃어 재끼는 것이었다.

핸드폰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크게 울리는 것 같아 나는 서둘러 핸드폰의 볼륨을 줄였다.

그렇게 웃어대던 여자가 말했다.

 

"손님, 괜찮으세요?"

 

갑자기 목소리를 바뀐 그녀의 목소리는 다름 아닌 아까 나를 일으켜 세우느라 낑낑대던 그 점원이 목소리였다.

 

", 설마... 그 때 그 점원이었어요?"

 

다시 한참 웃어대던 여자가 대답했다.

 

"글쎄요, 지금 내가 단지 그 점원 목소리만 흉내내는 거라는 생각은 못하구요?"

 

"하여튼 그 장소에 있었다는 거로군요."

 

"딩동댕~~"

 

"그럼 지금 내가 보이는 곳에 있나요?"

 

"글쎄요... 그건 지금 말하기 싫은데... 원하면 찾아봐요

지금 내가 당신 앞에 나타나면 상금을 줄 수 없잖아요.

상금이 10억인데, 타고 싶지 않아요?

한가지 말해 줄 수 있는 건 오늘 당신이 집 밖으로 나온 이후부터 해서 벌써 여러 번 나와 마주쳤죠."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충분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슈트로 변신한 사람과 진짜 여자를 구분할 만한 능력이 없으니.

 

"근데 내가 설령 당신을 찾아낸다 쳐도 당신이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거야 내가 부정하지 못할 만큼 확실한 증거를 내밀면 되잖아요. 안그래요

그런데 이미 조금씩 눈치채고 있을 거 같은데요."

 

그러면서 또다시 간드러지게 웃고 있다.

나는 그녀와 연결된 김에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그럼 뭐 좀 물어 볼께요.

몇 가지 짚히는 게 있는데 이 슈트를 착용하고 있다가 조금 기스라도 나면 어떻게 되는 거죠?

혹시 얼마 뒤에 풍선처럼 터져 버리는 거 아녀요?"

 

", 똑똑한데요?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신거에요? 축하드려요.

그런데, 우선 한 가지... 전화로 그렇게 큰 소리로 슈트 운운하면서 떠들지 말아요.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잖아요."

 

그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주변에 앉아 있던 다른 손님들이나 종업원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그걸 보고 나는 창가 쪽에 몸을 바싹 디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사실인가 보군요."

 

"ㅎㅎㅎ 그렇게 갑자기 목소리 줄이지 않아도 되요

뭐 사람들이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테니깐요.

대답을 해드리죠.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예전 슈트는 그런 일이 있었어요. 초창기 모델이죠.

다행히 지금 모델은 그런 단점은 해결되었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밖에서 뻥 터지는 일 같은 건 없어요."

 

"그럼 녹거나 그러지는 않나요?"

 

"당연히 황산이나 염산같은 액체에는 녹죠. 혹시 아세톤 같은 거에도 녹을까봐 걱정하는 거에요?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그런 생활 도구 같은 거에는 충분히 대비가 되어 있어요."

 

웬지 그녀를 찾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쉽게 생각해서는 꼬투리가 잡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가발에서 머리카락 뽑아 봤나요?"

 

"."

 

"어머, 빠르기도 하셔라. 그럼 이해가 빠르겠네요. 가발이나 슈츠 모두 생체 단백질 성분이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진짜 사람 몸하고 구성성분이 비슷해요

배양시킨 거니깐."

 

"지금 배양이라고 했나요?"

 

"맞아요. 배양 기술을 이용해서 만들었죠. 그거 하나 만드는데 돈도 돈이려니와 시간도 꽤나 걸려요.

그러니까 함부러 확인한답시고 훼손하지 말아주세요. AS같은 건 못해줘요.

그럼 좀더 즐겁게 쇼핑 하도록 해요. 안녕~~~~"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가 뚝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