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여자로서의 쇼핑 ... 하지만

 

 

이마트에 들어가니 입구부터 갖은 상품이 눈길을 잡아 끈다.

그렇게 시선을 주면서 걸으니 여기 저기에서 점원들이 나를 부른다.

 

"언니, 뭐 찾으세요?"

 

"언니, 여기 와 보세요."

 

여기 저기에서 나를 언니라고 부르면서 잡아끌고 있다.

언니라고?

ㅎㅎㅎ 이 가죽 안에 숨겨져 있는 모습을 보아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이쁜 얼굴과 가냘픈 몸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40대의 남자가 들어 있다고.

하지만 나의 겉모습을 보고 이 안에 겉보기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이지 겉모습 하나만 바꼈을 뿐인데 이렇게 세상이 달라지고 대접이 틀려지다니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나는 그렇게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점원들의 소리를 즐기면서 쇼핑을 시작했다.

 

나는 우선 신발부터 찾았다.

아무래도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이런 남자 것 같은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것은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으니깐.

역시 노련한 장사꾼은 다르다.

내가 신발을 찾는 것을 눈치챈 듯 신발 코너 점원들이 내 곁에 바싹 다가서서 접대를 한다.

 

"언니, 신발 사시려고요?"

 

", 적당한 게 있을까요?"

 

"그럼요, 뭐 찾으시는데요?"

 

갑자기 조금 말문이 막혔다.

지금 이 차림에 어떤 신발이 어울릴까?

그리고 그 신발의 이름은 뭐지?

부츠? ? 운동화?

그리고 지금 내 발 사이즈는 얼마일까?

220? 230?

혹시 여자는 신발 사이즈도 55라든지 66이라든지 , 아니면 다른 단위로 부르는 건 아닐까?

여기서 내가 말을 잘못하면 이 점원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좀 골라 볼게요'라고 말을 흐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점원은 '그럼 찬찬히 둘러 보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자리를 뜨는 직원을 보면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괜히 걱정한 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신발을 고르는 척하며 다른 손님이 직원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가만히 엿들었다.

그녀들의 대화를 통해 나는 여자 신발도 치수는 230 이런 식으로 남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부른다는 것과 펌프스, 로퍼, 레인부츠 같은 남자에게는 조금 낯선 신발 이름들을 알 수 있었다.

 

참내, 여자인 척 하다보니 의외의 곳에서 긴장하게 되는구나.

 

그러면서 나는 찬찬히 신발들을 골랐다.

하지만 예쁜 신발들이 너무 많아서 결정을 내리기는 않았다.

먼저 내 발 사이즈부터 알아야겠기에 나는 굽이 없는 신발을 하나 골라 신어 보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내 발 사이즈가 235정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원래 발 사이즈는 270인데 지금 발 사이즈가 235라니...

도대체 지금 내 신체가 얼마나 작게 오그라들었는지 발 사이즈 만으로도 실감할 수 있었다.

발 사이즈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쇼핑을 할 차례다.

우선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스니커즈와 굽이 그다지 높지 않은 단화를 골랐다.

 

그럼 이제 힐을 골라 볼까?

 

여자는 뭐니 뭐니 해도 굽 높은 하이힐 아니겠어 라는 생각에 힐이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맘에 쏙 드는 힐을 하나 꺼내서 신어 보았다.

이런 힐은 젊어서 한창 여장에 빠져들었을 때에도 신어 본 적이 없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신을 수 있겠지 하면서 힐에 발을 넣고 일어 서려는 순간 나는 중심을 잃고 뒤로 꽈당 쓰러져 버렸다.

그 때문에 매장에 있던 손님들이며 점원들의 눈길이 온통 나에게 쏠려 버렸다.

황급히 점원 하나가 달려와 일으켜 주는데 웬일인지 쓰러져 있는 내 어깨를 잡고 낑낑대면서도 어쩌지를 못하는 거였다.

나 또한 당황해서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다가 신고 있던 힐 때문에 다시 한번 넘어졌는데 이번에는 그 점원과 몸이 포개져 버렸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너무나 챙피해서 황급히 일어나 아직도 쓰러져 있는 점원을 일으켜 세웠다.

 

"아이고, 저 때문에... 정말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손님... 다치신 데는 없는 거죠?"

 

,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으니 멍이 들었다고 해도 겉으로 티가 날 리가 없다.

나는 괜찮은 것 같다고 대답하고는 조금 편한 힐은 없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 여자가 골라 준 것은 높기는 하지만 뒷 굽이 뾰족하지 않은 소위 펌프스라고 하는 거였다.

다행히 펌프스는 힐과는 달리 바닥과 닿는 부분이 넓어서 걷기가 편했다.

그런데 옆에서 신발을 골라 주던 점원이 한 마디 했다.

 

"발이 참 이쁘시네요. 정말 부러워요. 그런데 힐을 한 번도 안 신어 보셨나봐요."

 

"?"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묻는 나를 보고 점원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나는 점원이 한 말의 의미를 곰곰히 되세겨 보았다.

조금 전에 넘어져서 하는 말은 분명 아닌데...

발이 예쁘다.... 힐을 한 번도 안 신어 봤다....

이 둘이 어떻게 연결되는 거지?

그러다가 문득 나는 여자들의 발이 힐 때문에 기형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에 비하면 내 발은 아주 매끈하고 굳은 살이나 휘어진 구석이 하나 없는 어떻게 보면 어린 아이같은 발이었다.

 

"....."

 

그러면서 나는 골라 놓은 신발을 건네 주었다.

그것을 본 점원은 서랍에서 상자에 든 똑같은 신발을 꺼내 계산대로 가져갔다.

계산을 하면서 나는 스네커즈는 지금 신고 다닐 거라고 하면서 신고 왔던 슬리퍼를 대신 상자에 넣었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점원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너 아까 왜 그렇게 손님을 일으키지 못하고 낑낑댔어?"

 

".. 그게 말이야... 저 손님 의외로 무겁더라고... 꼭 남자같앴어.."

 

"설마...???"

 

귓속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내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

'무겁더라고, 꼭 남자같았어...'라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차마 더이상 쇼핑을 하지 못하고 이마트 건물을 나와버렸다.